당신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정체성을 정하던 기준이 변하고 있다. <무엇을 생산하느냐>에서 <무엇을 소비하느냐>로 직장 소속이 어디이고 직업이 무엇인지 보다무엇을 입고,어떤 브랜드의 향수를 쓰며,어떻게 꾸민 집에서,어떤 음식을 먹고 지내는지가자신에 대한 중요한 서술이 되고 있다. 시간을 보낸 장소들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 요소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콘텐츠는 상당수가 이렇다. 한마디로 소비가 그 사람의 정체성, 곧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이다.팔로우를 얻으면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이 같은 소비행적은 놀랍게도 수입을 창출하는 생산활동이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소비선택은 복잡해졌다.물건과 장소를 아주 많이 알아야한다. 자극은 넘치고 결정은 힘들다. 활시위에 두 개의 화살을 얹어 동시에 따로 떨어져 있는 두개의 과녁을 맞추려면 잘 될까?이것은 신궁의 경지이다.진정한 고수가 되어도 성공할까 말까 한 일이다.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우리는 한 번에 한 발의 화살을 쏠 수밖에 없다.그런데 소비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한 개의 화살을 당기면서도 여러 개를 맞추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경로로 자극받은 욕구는 우선 순위를 정하기 힘들어 한다.어느 과녁을 맞춰야 할지 누군가에게 그 결정을 맡기고 싶어한다. 상식적 판단을 해보자. 어느 과녁을 맞춰야 할까?당연히 자신의 마음이다.그런데 요즘 우리의 마음은 그리 독립적이지 못하다.타인의 반응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홀로 기쁘고 홀로 만족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공교육이 남긴 자기성찰 훈련은 자꾸만 남의 눈에 보기 좋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남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뭐가 좋은지 아는 사람은 적다.오히려 나처럼 어쩔 줄 몰라하기는 매 한가지.그래서 선택은 확신이 없다. 늘 바람에 흔들린다.어렵게 장만한 화살 하나를 들고 흔들리는 과녁 맞추기에 많은 이들이 진을 빼고 있다. 오늘날의 마케팅, 브랜딩은 자신들이 가리키는 과녁을 맞추라고 외치고 있다.심지 굳은 소비자가 그리 많지 않음을 그들은 아주 잘 안다. TV광고, 신문, 잡지, 버스 안과 밖, 지하철 개찰구부터 플랫폼까지는 물론이고 에스컬레이터가 지나는 벽면과 객차 내부에도 광고판 일색이다. 빌딩 엘리베이터 안에도 이걸 사라는 메세지가 모니터에 넘친다. 스마트폰도 다 마찬가지이다.여기저기 끊임없는 배너와 팝업 창은 실수로라도 클릭을 받기 위해 요란하다.개인 온라인 채널은 어디 가서 뭘 먹고, 뭘 입고, 뭘 하는 지를 알리는 광고판과 같다.스폰서와의 협약을 기대하는 멘트도 유쾌하게 반복한다. 친구와 인테리어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나면 인테리어 관련 사이트가 검색 창 옆구리에 떠오른다.마이크 활성화로 내 이야기를 엿듣는 사이트 덕분이다.그 덕에 컴퓨터를 켜서 하려던 작업을 까먹고 그 광고만 보다가 결제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연휴에 가구 전시 쇼핑몰 이케*에 갔다.딱히 살게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심심한데 놀게 없어서 갔다.이곳은 100원짜리 하나만 사도 5시간 주차무료다.건물이 보이는 300미터 앞에서부터 주차장에 들어서기 까지 15분 소요.쇼핑을 오락 삼아 놀러 오신 분이 이토록 많다. 우리의 삶은 소비로 가득하다.쇼핑은 이 시대의 가장 일반적 오락이 되었다. 나는 분명 살 게 없다며 집을 나섰지만 결국 몇 개의 제품을 샀다.일단 그 안에 들어선 순간 당연히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무엇인가를 사려는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 줄지어 다니니 그 에너지가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로 말은 안 해도 쇼핑부흥회와 다를 바 없다. 현관 앞에 둘 작은 의자와 인덕션에서도 사용 가능한 1리터짜리 라면 냄비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요즘 베이킹에 취미를 붙인 작은아이가 몇 가지 도구를 구매해서 약 10만원을 쓰고 왔다. 물론 식사비용은 별도다.식구들은 선방했다며 웃었다. 축구장 보다도 크다는 이케* 매장안에는 얼마나 많은 물건이 있을까? 쉴틈 없는 자극, 편리와 재미가 있는 시스템은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쇼핑으로 소모하게 만든다.그리고 결국 수많은 버릴 것들을 집에 쌓아 놓게 만든다.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산다.버리라는 자극은 적고, 사라는 자극이 훨씬 많기 때문 아닐까 싶다. <좋은 옷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개념으로 생겨난 아울렛.실제 소비 개념은 <같은 비용으로 더 여러 개를 갖을 수 있다>에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다다익선으로 기울어져 있다. 자극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은 쓰레기가 생긴다.개인과 기업 차원에서 모두 무시무시한 양의 쓰레기가 넘치고 있다. 그런데 소비가 멈추면모든 게 해결 될까? 이 역시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오늘 신문에 배우 박진희씨가 환경 이슈로 1인 시위를 하고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텀블러를 사용하자는 박진희씨의 인스타그램에 종이컵 제조업을 한다는 분이 댓글을 올렸다고 한다.자신의 생계를 언급한 것이다.좋은 의도의 환경운동이 누군가에게는 타격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나 그래서 포기할 일도 아니다.박진희 중앙일보 인터뷰 <-- 노란색 클릭 절약, 절제를 말하기에도 조심스러워진 것일까?하지만 지금과 같은 소비는 분명 문제가 있다.단순히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흔들리는 과녁을 맞추려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사고 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이것은 정신적 소모도 크다.지치는 일이다. 소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접근에는 좀 더 신념이 필요하다. 흔들리는 것 자체가 문제다. 선택의 가치관이 필요하다.여기에 대한 답을 주는 것들을 찾아보고 나도 말하려 한다.